박혁거세왕
BC 69~AD 4- 신라의 시조
(재위 BC 57~AD 4) - 하늘에서 내려온 알 속에서 태어나 사로 6촌의 왕이 되었으니 국호를 서라벌이라 했다. 알영정에서 태어난 알영을 왕비로 맞아 신라를 다스리니 사람들이 두 명의 성인()이라 불렀다.
탈해왕
?~80- 신라 제 4대왕
(재위57~80) - 동해에서 떠내려온 상자 속에 태어났다. 남해왕의 신임을 받아 왕의 사위가 되고 남해왕이 죽자 유리와 왕위를 놓고 잇금으로 대결을 벌였다. 유리왕이 죽자 왕위에 올라 신라를 다스렸다. 주주(),군주()등의 관직을 새로 만들었다.
미추왕
?~284- 신라 제13대 왕
(재위 262~284) - 김알지의 후손으로 최초의 김씨 왕이다. 백제의 침입을 물리치고 농업을 장려하는 등 내치에 힘 썼다. 14대 유례왕 때 이서고국()이 쳐들어왔을때 귀에 대나무잎을 꼿은 군대가 홀연히 나타나 도와주었는데, 뒤에 미추왕릉을 보니 대나무 잎이 쌓여 있었다는 설화가 전해 진다.
법흥왕
?~540- 신라의 제 23대 왕
(재위 514~540) - 지증왕 대의 개혁 조치를 바탕으로 율령을 반포하고 군사 제도를 정비했으며 불교를 공인하여 신라가 중앙집권적 국가 체제를 갖추도록 하였다.
진흥왕
534~576- 신라 제 24대 왕
(재위 540~576) - 이사부, 거칠부 등의 장군을 중용하여 한강유역을 획득하고, 백제 성왕을 사로잡아 죽였다. 이어 대가야를 평정하고, 화랑제도를 창시하는 등의 업적을 통해 삼국통일의 기반을 닦았다. 한편[국사()]를 편찬하고 중국과 통교하는 등 문화적 업적도 쌓았다.
무열왕
604~661- 신라 제 29대 왕
(재위 654~661) - 폐위된 진지왕의 후손으로 가야 왕족 출신인 김유신 가문과 힘을 합쳐 신라의 중신으로 활약했다. 백제, 고구려의 위협에 맞서 당나라와 동맹을 맺고 중국 문물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654년 진덕여왕이 죽자 군신의 추대로 왕위에 올라 최초의 진골 출신 왕이 되었으며, 660년 당군과 함께 백제를 멸망시켰다.
문무왕
626~681- 신라 제 30대 왕
(재위 661~681) - 무열왕의 맏아들로 무열왕의 뒤를 이어 통일전쟁이 힘써 668년 고구려를 멸망시켰다. 그 직후 당나라의 야욕으로 나당전쟁이 일어나자 676년까지 치열하게 싸운 끝에 당나라 세력을 몰아내고 삼국통일의 대업을 완수하였다. 이후 당나아와의 우호 관계를 회복하여 당의 문물을 수입하고 통일된 나라를 정비하는 힘 썼다. 681년 왕이 죽자, 동해의 호국용이 되겠다는 유언에 따라 화장하여 대왕암에 장사지 냈다.
신문왕
?~692- 신라 제 31대왕
(재위 681~692) - 문무왕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올랐다. 즉위 초에 장인인 김흠돌을 비롯한 진골 귀족 세력이 일으킨 반란을 진압하여 강력한 전제왕권을 확립하였다. 이를 바탕으로 국학을 창설하고 9주 5소경을 정비 하였으며 녹읍을 폐지하는 등 전성시대를 이룩 하였다.
경덕왕
?~765- 신라의 제 35대왕
(재위 742~765) - 신라 중대의 전제왕권이 약화되던 시기에 왕위에 올라 왕권 강화를 위한 개혁정치를 추구하였다. 개혁을 위해 강력한 한화정책()을 실시하여 지방 조직과 관직을 한식()으로 고치고 국학을 중시 하였다. 경덕왕의 이러한 정책은 귀족들의 반발을 가져왔다. 이 밖에 불교의 중흥에도 노력하여 불국사, 석굴암 등을 창건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