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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 1914. 04. 01.  면제실시에 의하여 내동면으로 됨.
  • 1955. 05. 01.  법제39호로 경주시 승격과 불국사출장소 설치.
  • 1973. 07. 01.  법정동인 시래동, 구정동, 천군동 일부를 통합하여 행정동인 정래동으로, 진현동, 마동, 하동을 통합하여 불국동으로, 평동, 조양동, 시동을 통합하여 삼성동으로 개칭.
  • 1984. 09. 01.  정래동사무소를 현 위치로 이동.
  • 1985. 05. 01.  동 통폐합으로 법정동인 평동은 행정동 도동동으로, 조양동과 시동은 정래동으로, 천군1동은 보덕동으로 조정.
  • 1998. 11. 14.  행정동 통합으로 정래동, 불국동, 도동동 일부(평동)가 불국동으로 통합.

유래

  • 불국동(佛國洞)
    • 관내에 소재하고 있는 세계적인 문화유산인 불국사의 사찰명칭에서 비롯되었으며, 즉 불국(佛國)이라 함은 부처님의 나라라는 뜻으로 정토(淨土), 법화(法華), 화엄(華嚴)의 불교사상체계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이루어져 있는데서 유래된 것임.

  • 진현동(進峴洞)
    • 동의 동남지역에 위치하여 신라 불국토의 상징인 토함산 자락의 마을로서 남쪽으로 외동읍 신계리와 경계를 이루고 토함산을 넘어 동해로 가는 고개 밑에 위치한 마을이란 뜻에서 진티, 진재라 부르다가,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거 진현이라 불렀다한다.
      지금의 구정시장이 당초 이곳에 위치하여 조선시대 말까지 이어졌으며, 세계문화유산인 불국사, 석굴암이 위치해 있어 해마다 수만 명이나 몰려오는 관광객을 위한 숙박, 기념품판매 시설이 질서 있게 들어서 있으며, 돌박, 물미, 웃말, 절마을, 중리, 장영, 새말 등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주요 기념품 및 시설물은 불국사, 석굴암, 오동수, 청마시비 등이 있다.

  • 마동(馬洞)
    • 지역의 동편 중앙에 위치한 마을로서 원래 용동이라 불려져 오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마을에 잦은 참상이 발생하여 마을사람들이 원님에게 고하니, 원님이 갇혀있던 용이 천리 길을 달리는 말처럼 승천하라는 뜻으로 마을이름을 마동(馬洞)이라 고쳐 지어준 후 지금까지 계속 마동이라 불리게 되었다.
      토함산자락의 가장자리에서 빼어난 자연경관을 이용하여 요식, 숙박, 공예 등 관광산업이 주를 이루고 있으며, 갓거랑, 구장터, 뒷마을, 못안각단, 탑마을, 정자마을, 부뭇골 등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주요 유적 및 기념시설물은 덕봉정, 마동3층석탑, 봉성사터 등이 있다.

  • 하동(鰕洞)
    • 동의 동북쪽에 위치하여 천마산을 경계로 보덕동과 연접하고, 약500년 전 마을을 개척할 당시 마을서쪽에 위치한 대덕산(大德山)의 모양이 새우와 같은 형상을 지니고 있고 그 속에서 흘러내리는 시내에는 새우가 많았다고 하여 새우골, 새골이라고 불리게 되었으며, 1914년 행정구역 통폐합에 의하여 하동(鰕洞)으로 명명되었다.
      그 후 1958년 사라호태풍으로 많은 농지가 유실되어 지역의 홍수조절 및 관개용수를 위하여 저수지(하동지)가 축조되면서 마을에는 많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고, 지금은 못안마을, 분점마을, 점골, 큰마을 등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마을동편 보불로의 개통과 함께 대규모 민속공예촌 및 요식, 숙박업소 등이 입주하게 되었다.
      마을의 주요 기념물 및 시설물은 민속공예촌, 하동저수지 등이 있다.

  • 평동(坪洞)
    • 동의 북서쪽에 위치한 마을로써 서편에는 남산이 위치해 있고 북으로는 월성동과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외동읍 제내 토상지와 토함산지류의 시래천이 합류를 이루어 문천(汶川)으로 이루어지는 지점에 위치하고 있어 비옥한 토질의 넓은 농토가 있는 마을이라 하여 들마을, 평리(坪里)로 불려졌고, 1986년 5월 1일에는 행정동 도동동에 속해 있었으나, 1998년 11월14일의 행정구역조정에 의해 불국동으로 편입되었다.
      마을 앞에 광활하게 펼쳐있는 넓은 들을 이용하여 선진영농기술을 일찍이 도입하여 앞서가는 농촌으로 정평이 나있다. 사리(士里), 수남(水南), 수북(水北), 대백(大白), 신리(新里) 등의 자연부락이 있다.
      주요 기념물 및 시설물은 목양정(牧養亭), 정지백호강임비(사리마을 앞의 남쪽 반월산(半月山)에 세워져 있으며 정씨(鄭氏)의 시조이고 자산 진지촌의 수장인 지백호(智白虎)의 업적을 기리기 위하여 후손들이 세운 비석임)

  • 시래동(時來洞)
    • 동의 남쪽 시래천을 중심으로 형성된 마을로써 남으로 외동읍 괘릉, 방어와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조선시대 최사민(崔思敏)이란 선비가 열세번이나 초시에 응시하고도 급제하지 못하자 때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마을이름을 시래(時來)라 불렀다고 한다.
      마을 뒤편에는 높이 80m의 산이 있어 신라가 도읍을 정할 때 이 산을 남산으로 정할려고 하였으나 산세가 약하여 지금의 남산으로 정하고 이곳을 개남산이라 하였고, 형상이 기러기가 날아가는 형국이라 산 동편에다 못을 막고 서편바위에는 정으로 구멍을 내어 쪼진바위라 하여 산세를 돋구었다한다. 예부터 시래천의 상, 중, 하보의 물을 이용하여 비옥한 농토를 이루고 있으며, 특히 상보의 물을 농사에 이용하고 남은 뒷물을 상보저수지에 가두어 다시 영농에 이용하는 지혜를 보였다. 시래, 광산, 구매, 중방 등의 자연부락으로 형성되어 있다.
      주요 기념물 및 시설물은 월성 최씨 정려각, 쪼진바위 등이 있다.

  • 구정동(九政洞)
    • 불국사역과 로타리에서 시정마을에 이르기까지 지역의 중심이 되는 곳으로, 고려시대에서 조선시대에 이르기까지 정승이 아홉이나 배출되었다하여 구정리라 불려졌고, 구정(九政), 탑거리(塔巨里), 다릿거리, 방천촌(防川村), 밭가운데, 웃마을, 장터마을, 소정각단(蘇亭閣單), 정거장마을 등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져 있다.
      주요 기념물 및 시설물은 구정동 방형분, 로타리탑, 분성김씨 정려각, 불국사온천, 불국사 시장, 나자레원, 성애원, 민제양로원, 원불교포교당, 소정덕봉 고택터 등이 있다.

  • 조양동(朝陽洞)
    • 동의 북쪽 편에 위치한 지역으로 월성동과 경계를 이루고, 마을 동편에는 국도 7호선이 관통하고 있어 교통이 편리하며, 예부터 경주-울산 간을 잇는 역(驛)이 있었던 곳으로 조역(朝驛)이라 부르게 되었고, 마을 남쪽의 대제지(大提地)가 위치해 있어 넓고 비옥한 농토를 형성하여 대부분 미곡 및 축산업에 종사하며 조양, 복제, 탑리, 조전, 앞마을, 청수미기 등의 자연부락이 형성되어 있다.
      주요 기념물 및 시설물은 성덕왕릉, 효소왕릉, 성덕왕릉귀부, 대제지 등이 있다.

  • 시동(矢洞)
    • 동의 서쪽 마석산 자락에 위치하여 남으로는 외동읍 북토리와 북으로는 평동마을과 접하고 있으며, 마을에 대나무가 많이 생산되어 전란 때 쓰일 화살재료를 만드는 곳으로 이름나 시리(矢里)라 불리다가, 1914년 4월 1일 행정구역 폐합에 의하여 내동면 시리라 불려졌고, 1955년 9월 1일 시제(市制) 실시에 의하여 시동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으며, 1973년 7월 1일 법정동인 시동, 조양동, 평동을 묶어 삼성동으로 되었으며, 1986년 5월 1일 법정동인 시동, 조양동, 시래동, 구정동을 묶어 행정동인 정래동에 속해 있었으며, 1998년 11월 14일 동 통합으로 불국동으로 편입되었다. 큰대일, 샛대일, 뒷대일, 귀격(貴格) 등의 자연부락으로 이루어졌고, 대부분 토지가 사질토양으로 형성되어 있어 양질의 부추생산으로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다.
      주요 기념물 및 시설물은 월성이씨 정려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