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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혁

동천동(東川洞)은 암곡과 황룡골에서 흐르는 물이 합쳐 내려오는 거랑을 신라시대 이전부터 알천(閼川)이라 불렀다. 육부촌장이 알천가에 모여, 임금을 세우고 건국할 것을 의논한 곳이 바로 이곳이며, 그로 인해 박혁거세가 추대되어 신라 건국을 보게 된 것이다. 이곳은 경주로 흐르는 물줄기의 목줄이 되며,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에 걸쳐 둑을 쌓고 사방사업을 했다는 비문이 발견되었다. 그 부근이 바로 옛 기록에 나오는 동천과 동천사라 한다.
동천동은 1955.9.1. 경주군 천북면 동천리를 경주시로 편입하여 법정동인 동천동으로 고쳐 불렀고, 1973.7.1 행정동인 동천동으로 운영되고 있다.

유래

동천은 마을앞 내를 동천(東川)이라 불렀는데 그것에 연유해 마을 이름을 동천이라 했다 한다. 동치라고도 하며 자연부락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 '윗동천'은 중리의 위쪽에 있다하여 ‘웃마을’ 또는 ‘상리(上里)’라 부른다. 
  • '중리(中里)'는 마을의 중심부라 하여 ‘중리’라 부르며, ‘샛말’이라고도 부른다. 
  • '대안동(大安洞)'은 8.15해방 후 일본과 만주에서 고국에 돌아온 동포들이 안주할 집이 없어 고생하므로, 당시 경주 읍민들이 후생주택을 지어 이들을 살게 하므로 이룩된 마을이다. 대안동은 크게 편안하기를 기원하는 뜻으로 지은 이름이라 하며, ‘후생촌’이라고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