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남면
- 정보의 바다, 인터넷을 통하여 우리 내남면을 방문하여 주신 것을 환영합니다. 우리 面은 경주시 남쪽에 위치한 전형적인 농촌의 청정지역으로 경주시와 더불어 인간과 자연이 공존하는 세계적인 문화 관광도시로 가꾸는데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경주시에서 천마총 서편 정남쪽으로 난 길을 따라 오능, 나정, 포석정, 삼능솔밭을 지나면 경주시 내남면에 이릅니다. 현재는 남산의 1/3-4을 지니고 있으나, 행정구역이 바뀌기 몇년 전까지만 해도 남산의 태반은 내남이었습니다.
내남면은 경주시의 서남쪽에 자리하며, 동으로는 외동읍과 경계하고, 남으로는 울산광역시 울주군과 경계하며, 서북로는 산내면, 건천읍과 경계합니다. 남산 서쪽비탈과 함께 형상강의 상류가 관통하고, 그야말로 물좋고 산좋은 청정지역을 이룹니다. 경부고속도로 개통전까지만 해도 언양, 양산을 거쳐 부산에 이르는 교통의 중추지였습니다. 경주-부산간 경부고속도로 역시 내남을 관통합니다. 이로 인해 신라시대부터 도읍 경주의 젖줄이었고, 각종 유적이 산재해있는 유서깊은 고장입니다.
面의 연혁(沿革)을 말씀드리면 1906년 군구역 조정(郡區域調定)으로 그 지명을 경주군 『내남면(內南面)』으로 지칭하여 현재까지 내남면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리동명은 상명(上椧), 하명(下椧), 백운(白雲), 노곡(蘆谷), 월산(月山), 이조(伊助), 용장(茸長), 배리(拜里), 굴석(窟石), 월남(月南), 탑리(塔里), 도초(道草), 율동(栗洞), 두대(斗岱), 두동(杜洞), 신리(新里), 화곡(花谷), 송림(松林), 와지(瓦旨), 천면(川面), 신을(辛乙), 남성(南星), 구왕(九旺), 평리(平里), 상신(上辛), 광석(廣石), 안심(安心), 구일(九日), 고사(古舍), 박달(朴達), 비지(飛只)의 31개 법정동으로 구성되었습니다. 1914.4.1 행정구역 폐합에 의하여 명계, 노곡, 월산, 이조, 용장, 배리, 율동, 망성, 화곡, 부지, 덕천, 상신, 안심, 박달, 비지, 탑리의16개 법정리로 개편하였습니다. 1975. 10. 1 행정구역 개편으로 율동과 배리가 경주시로 편입되어 법정동은 13개,행정동은 34로 분동시켜 현재에 이릅니다.
1989.1.1 군 명칭 환원으로 월성군 내남면을 옛날의 지명과 같이 경주군 내남면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1995. 1. 1 시군통합으로 경주시 내남면으로 오늘날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면의 지형은 금오산과 고위산을 잇는 금오산맥(金鰲山脈)과 단석산 고헌산을 잇는 주사산맥(朱砂山脈)이 남쪽으로 뻗쳐있어 각각 동과 서의 경계를 이루고 이들 산맥사이로 형산강 상류인 인천이 흐르고 있습니다. 형산강 상류인 내남은 평야가 넓고, 토질이 비옥하여 일찍이 쌀농사를 비롯한 오곡백과의 본산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재는 시설채소, 과수와 같은 원예작물과 특용작물, 한우,양돈, 양계등의 축산농가로 전업하여 농가소득을 올리고 있습니다. 또한 우리면은 경부고속도로와 국도 35호선이 중앙부의 남북으로 관통하는 한편 지방도 904호선이 동서로 연결되어있습니다. 교육시설로는 내남초등학교, 삼성생활예술고등학교가 있고 문화재는 용장사지삼층석탑을 비롯한 보물과 경덕왕릉과 같은 사적지등 24점의 지정문화재가 산재해 있는 곳입니다. - 마을명칭 및 유래
- 연혁
- 1906년 : 경주군 내남면이라 칭함
- 1906년 : 면사무소를 배리 박씨 정각에 설치
- 1914년 : 면사무소를 배리 박씨정각에서 부지리로 이설
- 1941년 : 면사무소를 부지리에서 용장리로 이설
- 1975년 : 법정이동 13개동, 34개 행정이동으로 조정
- 1991년 : 면사무소를 용장리에서 이조리로 이설
- 1995년 : 경주시와 경주군의 통합하여 경주시 내남면 으로 개칭
- 명칭유래
옛날부터 경주부의 남쪽에 있다는 뜻으로 경주군 부남면 으로 부르다가, 일제가 제멋대로 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경주부의 남쪽안에 있다 하여 경주 내남면이라 했다.
- 茸長里 : 경주 남산에 신라 때 용장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지금은 절이 없어지고 절터와 석탑이 남아 있다. 그래서 용장사지라 부 르고, 이 절의 이름을 따서 이 마을을 용장이라 부르고 있다.
- 蘆谷里 : 옛날에 마을 앞에 갈대가 무성하게 자라서 마을의 울타리 역할을 한다고 하여서 노실이라고 한 것을 한자로 노곡이 라고 함
- 椧溪里 : 옛날에 북명사라는 절이 있었는데 그 절이 있었던 자리에 돌홈이 있었다 한다. 돌홈을 놓아서 물을 먹으려고 했는지 절 소유의 논에 물을 대려 했는지 알수 없으나 근래까지만 해도 그 자리에 돌홈이 놓인 것을 보았다는 사람이 많았 다. 그래서 이 돌홈의 홈 명자와 이 마을에 있는 계곡이 매우 좁아서 마치 홈과 같다하여 사내 계자를 써서 명계라 고 한다.
- 月山里 : 달같이 둥근 산 아래 있는 마을은 달미라고 하였는데 한자로 월산이라 함
- 鳧池里 : 마을 앞에 오리모양 산이 있다 해서 오리 부자를 따고 이 마을 형상이 소가 누운 것 같다 하여서 와지라고 하였는데 못지자를 따서 부지라고 했다 함
- 德泉里 : 박달쪽에서 내려오는 냇물은 내 바닥으로 스며들어 물이 많이 흐르지 않지만, 구왕골 동래쪽에 “ 동보”라는 큰 보 가 있어서 이 보에는 물이 많이 새어나온다고 한다. 이렇게 많이 새는 물로 농사를 지을 수 있어서 덕천이라고 한 것 이다. 행정구역 연혁 및 명칭 유래
- 安心里 : 옛날에 물 좋고 나무 많고 주민들이 잘 화합하여, 난이 있을 때마다 다른 마을 사람들은 피난을 가야 했지만 이 마을 사람들은 피난을 가지 않아도 안심하고 살수 있었다고 하였음
- 上辛里 : 상신을 마신 혹은 마성으로 부르고 있는데 맏이는 맵다는데서 매울신자를 쓰고 마신이라고 하며 이를 한자로 상신이라 함
- 朴達里 : 박달 뒷산의 생긴 모양이 흰 닭과 같다 하여 옛날에는 백 계동이라 했다. 그러던 것이 흰 닭 즉 “밝은 닭”이 박달로 굳은 것으로 봄
- 飛只里 : 마을 앞에 학산이 있는데 이 산이 학이 날아가는 형상이라 해서 날 비자와 다만 지자를 따서 비지라고 함.
- 花谷里 : 조선영조때 화계라는 호를 가진 유의건 선비가 정자를 짓고 제자들을 양성한 곳인데, 선비의 호를 따서 화실이라 한다 하고, 그리고 이곳 산의 생긴 모양이 꽃 같다고 해서 붙임 이름
- 望星里 : 망성리는 동쪽 망성산의 “망”자와 성부산의 “성”자를 따서 망성이라 했다.
- 연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