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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덕여왕의 발자취를 찾아

한국관광의 메카 “Beautiful Gyeongju”가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낭산으로 떠나는 자전거여행
경주역에서 통일전, 불국사로 가는 길 중에 낭산이 있다. 산의 높이는 104m정도로 낮지만 신라의 중심지에서 멀지 않고, 신성시 여겼던 곳이라 역사서에 자주 등장한다. 삼국사기에는 낭산에 구름이 일고 그 주변으로 향기가 퍼져 나가 오랫동안 사라지지 않았다는 기록이 있다. 이것을 보고 왕은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노는 것이라며 명당으로 여겼다 전한다. 이 산 정상부에 선덕여왕이 잠들어 있다. 한반도 최초의 여왕이었던 만큼 역사 속에서 다양한 일화를 남긴 인물이다. 선덕여왕의 발자취를 따라 자전거여행을 떠나 보자.
  • 여행코스 설명

    #경주자전거여행코스 #경주반나절코스 #경주시내권자전거여행 #테마여행

    경주역에서 출발해 선덕여왕과 관련 있는 유적들을 차례로 보고 이동 동선에 있는 기타 유적도 함께 둘러보는 코스로 일정을 짰다. 경주역에서 선덕여왕릉까지 가는 7번 국도는 통행량이 많다. 자전거 이동 시 차도가 아닌 보도를 이용하자. 해당 구간의 보도는 자전거·보행자 겸용도로이므로 자전거 통행이 가능하다.
  • 코스 제안

    자전거코스
    1경주역 1.5km 2첨성대 2.5km 3능지탑지 1.6km 4선덕여왕릉 1.7km 5황복사지3층석탑 950m 6진평왕릉 2.8km 7분황사 770m 8황룡사지, 황룡사역사문화관 2.6km 9경주역

    코스 길이 : 14.4km (반나절 여행코스) / 코스 난이도 : 중

#1첨성대

첨성대 전경

선덕여왕 때 축조된 천문대로, 신라를 대표하는 유적 중 하나다. 월성 북서쪽 평지 한가운데에 자리하고 있다. 독특한 모양에 우선 반하고, 빛나는 야경에 매혹되고, 숨겨진 과학적 비밀에 놀란다. 첨성대의 돌은 어느 것 하나 허투루 놓아진 것이 없다. 먼저 선덕여왕을 상징하는 비밀이 첨성대에 있다. 첨성대 몸체의 돌단은 총 27단인데, 27번째 왕위에 오른 선덕여왕을 뜻한다. 꼭대기 정자석까지 합하면 29단, 아래기단까지 합하면 30단이 되는 것은 음력 한 달의 날수를 상징한다. 첨성대를 이루는 돌의 개수는 365개 내외의 돌로 일 년의 날 수와 같다. 가운데 창문을 기준으로 위쪽 12단과 아래쪽 12단은 1년 12달, 24절기를 표시한다. 이렇게 돌에 하늘의 움직임을 함축해놓고 별을 관찰하고 나라의 길흉을 점쳤다. 하늘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시기를 결정할 수 있었던 점을 생각해보면 첨성대에 깃든 선덕여왕의 어진 마음이 그려진다.

첨성대 관람정보상세보기
  • 위치 : 경북 경주시 인왕동 839-1
  • 관람시간 : 09:00-22:00(동절기 21:00까지)
  •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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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능지탑지

능지탑지 전경

첨성대에서 선덕여왕으로 가기 전, 능지탑지에 잠시 들렀다. 신라 문무왕은 죽어서 동해의 해룡이 되어 왜적으로부터 신라를 지키겠다며 자신을 화장해 동해에 묻어달라고 유언했다. 능지탑지는 문무왕의 유언을 받들어 왕을 화장한 터로 전해지는 곳이다. 예로부터 능지탑, 연화탑이라 불렸으며 남산에 흩어져 있던 재료를 맞추어 복원했다. 원래는 기단 네 면에 십이지신상을 새긴 돌을 두르고, 그 위에 연꽃무늬가 있는 석재를 쌓아올린 5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일제강점기에 1차로 조사할 때 발견 된 십이지신상의 일부는 수습되어 경주박물관에 옮겨졌었는데 되가져와 복원하였다. 당시 크게 주목하지 않았던 돌무더기와 일대를 살핀 1969년 재조사 후 이곳을 문무왕의 화장터로 추정해 주목을 받았다.

능지탑지 십이지신상
능지탑지 관람정보상세보기
  • 위치 : 경주시 배반동 621-1
  • 관람시간 : 정해진 시간 없음
  •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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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덕여왕릉

선덕여왕릉 전경

선덕여왕릉으로 향하는 길. 낭산 정상에 있어 관람로 출발점에 자전거를 세워두고 선덕여왕릉까지는 도보로 이동한다. 아름다운 숲길 사이에 마련된 나무데크길을 따라 조금만 오르면 솔숲 사이로 왕릉이 모습을 드러낸다. 삼국유사에서 표현하는 선덕여왕은 지혜의 여왕이었다. ‘선덕여왕 지기삼사(善德王知幾三事)’라는 제목으로 선덕여왕이 미리 알아차린 세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그 하나는 당 태종이 보낸 모란과 관련한 일화이다. 태종이 모란 그림과 씨앗을 보냈는데 선덕이 그림을 보고는 “그 꽃에는 향기가 없을 것이다.”라고 했다. 씨앗을 심어 꽃이 필 때를 기다리니 정말 꽃은 향기가 나지 않았다. 두 번째는 옥문지이야기이다. 영묘사 앞 옥문지의 겨울, 난데없이 개구리들이 사흘 밤낮을 울었다. 왕에게 고하자 선덕은 알천랑과 필탄랑에게 서쪽으로 가면 적의 군사가 있을 것이니 소탕하라 명했다. 과연 서쪽 경계지역에 백제 병사 수백이 숨어 있어 이를 소탕했다.

마지막으로 선덕은 본인이 죽는 날과 묻힐 자리를 예언했다. 그는 자신이 죽으면 도리천에 묻어달라고 명했다. 신하들이 위치를 몰라 묻자 낭산의 남쪽이라고 말했다. 신하들은 유언대로 그를 낭산에 묻었다. 그로부터 33년 뒤, 문무왕이 낭산 기슭에 사천왕사를 지었다. 불교에서는 ‘사천왕천 위에 도리천이 있다’라고 했는데 사천왕천을 상징하는 사천왕사 위에 선덕여왕의 무덤이 있으니 바로 도리천이 되는 것이다. 신하들은 그때야 선덕여왕의 유언을 깨닫고는 감탄했다고 한다. 단정한 봉분 둘레의 소나무길을 따라 왕릉 한 바퀴를 가만히 돌아본다. 양지바르고 포근해 도리천이 있다면 이런 곳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게 한다.

솔숲 사이로 보이는 선덕여왕릉
선덕여왕릉 관람정보상세보기
  • 위치 : 경주시 보문동 산79-2
  • 관람시간 : 정해진 시간 없음
  •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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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황복사지삼층석탑

  • 측면에서 본 황복사지삼층석탑
  • 정면에서 본 황복사지삼층석탑

선덕여왕릉에서 내려와서 왔던 길이 아닌 반대편 마을길을 따라 간다. 낭산 둘레를 돌아 가다보면 들녘 중간에 덩그마니 서 있는 탑1기와 만난다. 황복사의 터에 세워진 삼층석탑이다. 황복사지삼층석탑은 신문왕의 아들 효소왕이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세운 탑이다. 2단의 기단 위에 3층의 탑 몸돌을 세운 전형적인 통일신라시대의 삼층석탑이다. 감은사지에 있는 동서삼층석탑과 국립경주박물관에 있는 고선사지 삼층석탑과 유사한 데 규모는 조금 작다.
효소왕이 즉위 원년에 탑을 세웠고, 그의 뒤를 이은 성덕왕이 사리와 불상을 탑 안에 넣어 신문왕과 효소왕의 명복을 빌고 왕실의 번영을 기원했다. 1942년 실시된 탑 해체수리 중 2층 지붕돌 안에서 금동사리함과 금동불상 2구를 비롯해 많은 유물이 발견되었다. 그 중 금동사리함 뚜껑 안쪽에 탑을 건립하게 된 경위와 함께 안치한 유물의 성격을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어 탑의 건립연대를 확실하게 알 수 있었다. 탑의 건립연대에 대한 확실한 추정이 가능한 점은 이 탑을 기준으로 다른 탑들의 형태를 비교하여 건립연대를 추정할 수 있기에 큰 의미가 있다.

황복사지삼층석탑 관람 정보상세보기
  • 위치 : 경주시 구황동 103번지
  • 관람시간 : 정해진 시간 없음
  •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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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진평왕릉

진평왕릉 전경

황복사지삼층석탑에서 동쪽을 바라보면 평지 가운데 왕릉이 1기 자리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보문동 들녘을 가르며 달려 진평왕릉에 닿는다. 선덕여왕의 아버지의 능이다. 보통 신라의 왕릉은 시내권 중심부에 모여 있거나, 산 중에 있는 경우가 많은데 진평왕릉은 독특하게도 한적한 논밭 뷰를 가진 곳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의 저자 유홍준 교수는 진평왕릉을 두고 “왕릉으로서의 위용을 잃지 않으면서도 소담하고 온화한 느낌을 준다.”고 표현했다. 호석, 십이지신상 등 장식이 없고 왕릉을 둘러싼 도래솔도 없다. 대신 고분 주변을 아름드리 고목들이 숲을 이루며 호위하고 있다. 날씨가 좋을 때면 진평왕릉에서 피크닉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만날 수 있다. 유홍준 교수의 표현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지는 분위기이다.

진평왕릉 관람정보상세보기
  • 위치 : 경주시 보문동 608
  • 관람시간 : 정해진 시간 없음
  • 관람료 : 무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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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분황사

분황사 전경

진평왕릉을 뒤로하고 분황사로 가는 길. 북천 둔치 자전거길을 이용해 안전하게 분황사로 이동하자. 분황사는 황룡사와 함께 신라의 국찰이었다. 선덕여왕 3년에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신라의 고승 자장대사와 원효대사가 머무르며 불법을 설파했던 유서 깊은 사찰이다. 창건 당시의 가람 배치는 찾아볼 수 없고 현재의 분황사 경내에는 조선 광해군 때에 지어진 금당 ‘보광전’이 남아 있다. 아울러 신라시대 석탑 중 가장 오래된 탑인 ‘분황사 모전석탑’이 분황사를 빛내고 있다. 돌을 벽돌 모양으로 다듬어 쌓아 올려 전탑의 형식을 모방한 석탑이다. 원래 9층 석탑이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현재는 3층만 남아 있다. 석탑 네 면의 모서리에 돌사자가 앉아 있고, 1층 몸돌 네 면에는 문을 만들고 양쪽에 불법을 수호하는 인왕상을 조각하였다. 지붕돌은 아랫면과 윗면이 모두 계단처럼 층계를 이루는데 3층의 지붕돌은 윗면이 네 모서리에서 위쪽으로 둥글게 솟은 모양이다. 그 밖에도 신라시대부터 사용했다고 전하는 우물 ‘삼룡변어정’, 원효대사의 업적을 기록한 비석의 받침돌인 분황사화쟁국사비부 등의 석조유물을 볼 수 있다.

분황사 관람정보상세보기
  • 위치 : 경주시 분황로 94-11
  • 관람시간 : 08:00-18:00(동절기 17:00까지)
  • 관람료 : 자세히보기
  • 문의 : 054 742 99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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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황룡사지와 황룡사역사문화관

황룡사지 전경

마지막 목적지는 분황사 옆의 황룡사지와 황룡사역사문화관이다. 동양 최대의 사찰이었던 황룡사는 진흥왕 때부터 건립을 시작해 진평왕을 거쳐 선덕여왕까지 3대에 걸쳐 지어졌다. 진흥왕 때에 궁궐을 짓다가 그곳에서 누런 용이 나타나는 일이 벌어졌고 절로 고쳐짓기 시작했다는 일화가 전한다. 진흥왕에 이어 진평왕은 신라의 세 가지 보물로 전해지는 ‘장육삼존불상’을 모시기 위해 금당을 지었다. 진평왕의 딸 선덕여왕은 당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대사의 권유로 호국의지를 담아 9층목탑을 세웠다. 높이 82m에 달하는 거대한 탑이었다. 고려시대 몽골군의 침입으로 위용을 떨치던 사찰은 터만 남기고 아스라이 사라졌다.
당대의 황룡사의 모습을 간접체험해볼 수 있는 황룡사역사문화관에 함께 들러 가자. 황룡사 건립부터 소실까지의 과정을 담은 3D영상 시청각실과, 발굴조사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신라역사전시실이 있고, 1층에는 황룡사 9층목탑을 1/10크기로 재현한 모형탑도 전시되어 있다.

황룡사역사박물관 내부 황룡사 9측목탑 모형
황룡사역사문화관 관람 정보상세보기
  • 위치 : 경주시 임해로 64-19
  • 관람시간 : 09:00-18:00 (1월 1일, 추석, 설당일 휴관)
  • 관람료 : 자세히보기
  • 문의 : 054 777 68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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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여행 시 꼭 알아두어야 할 안전수칙
자전거는 도로교통법 상 ‘차’에 해당한다. ‘차’로 간주하는 만큼, 자전거 전용도로가 없는 경우에는 인도가 아닌 도로를 이용하여야 한다. 도로 오른쪽 차로를 이용하고, 통행량이 많은 차도의 경우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기분 좋게 출발한 자전거 여행, 안전수칙 유념하며 끝까지 기분 좋게 마치자. 자전거 통행 시 알아두면 좋을 표지판도 숙지해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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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시청이 창작한 선덕여왕의 발자취를 찾아 저작물은 "공공누리" 제1유형:출처표시 조건에 따라 이용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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