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ro
경주의 심장부 경주읍성
옛 모습을 되찾다
글 글 _ 김지희     사진 사진 _ 박형준
사진 사진제공 _ 경주시청 문화재과
세월의 풍파를 겪으며 자리를 지키고 있었던 경주읍성.
이후 2018년 복원사업을 통해 동성벽과 동문 복원에 성공했다.
복원된 경주읍성과 그 주변은 문화관광지로 떠오르고 있다.
경주읍성에 얽힌 이야기들과 그 주변에 남아있는 역사의 흔적에 대해 알아보자.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경주읍성 복원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경주읍성 복원2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경주읍성 복원3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경주읍성 복원4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경주읍성 복원
읍성이란 군이나 현의 주민들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담당하는 성을 말한다. 경주는 통일신라 시대 이후 지방통치의 중심지였기에 경주에도 읍성을 쌓았고, 이 성이 지금의 경주읍성이다. 현재 경주읍성의 정확한 축조연대는 알 수 없지만 「동경통지(東京通志)」의 기록에 의하면 1012년(현종 3년)에 축조한 것으로 추정된다.
읍성의 성문은 동서남북에 향일문, 망미문, 징례문, 공진문의 사대문이 있어 이들 문을 통해 출입하였다. 특히 남문인 징례문에는 현재 국립경주박물관 종각에 걸려 있는 신라 성덕대왕신종이 매달려 있었다고 전한다.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켜온 경주읍성은 잊을 수 없는 역사를 지닌 곳이기도 하다.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에서 왜군에게 이 성을 빼앗겼었다. 하지만 당시 이장손이 만든 일종의 포인 ‘비격진천뢰’를 사용하여 다시 읍성을 되찾았다. 이후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읍성 대부분이 훼손되었고, 동벽만 옛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에 경주시는 경주읍성의 옛 모습을 되찾기 위해서 2009년 ‘경주읍성 정비복원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그렇게 2018년에 동성벽(324m)과 동문(향일문) 복원에 성공했다.
오랜 시간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경주읍성 복원
오랜 시간 한 자리를 지키고 있던 경주읍성 복원
현재 복원된 모습은 1745년(영조 21년)에 중수한 모습이다. 복원된 성벽과 향일문에는 야간경관조명을 설치해 경주읍성의 아름다움을 한층 고조시켰다. 경주읍성이 성공적으로 복원되면서 읍성 건너편 길가에는 아기자기한 카페와 식당들이 속속 들어서고 있다. 향일문의 복원으로 경주읍성은 경주의 문화관광 핫플레이스로 자리 잡고 있다. 앞으로 경주시는 남은 3개 문을 복원하기 위해 주변의 노후 불량주택을 매입·정비하여 북쪽 성벽 등의 복원정비를 추진할 계획이다.
고려 시대부터 조선 시대까지 행정, 생활, 군사기능을 담당했던 경주의 심장부 경주읍성. 사대문이 모두 복원되어 경주를 감싸는 그날이 기대된다.
경주읍성
 경상북도 경주시 북부동 1번지
경주읍성 주변에 있는 역사의 흔적
경주문화원
경주문화원
경주 법원 뒤편에 자리 잡은 경주문화원. 현재 이 건물은 향토사료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향토사료관에는 경주읍성 복원도부터 조선 시대의 경주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외부에선 다양한 경주의 유적들을 살펴볼 수 있다. 건물 입구 왼편에는 국보 제29호 성덕대왕신종이 걸려 있던 종각이 현재까지 보존되어 있다. 또 향토사료관 뒤편에는 경상북도기념물 제66호로 지정된 ‘동부동 은행나무’가 있는데, 이는 수령이 500년은 족히 넘은 아름드리 은행나무이다. 이곳은 은행잎이 노랗게 물든 가을에 포토존으로 유명한 곳이다.
경주문화원에서는 ‘경주읍성, 달빛으로 빛나다’라는 주제를 가지고 읍성투어도 진행하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 일정 변경이 생길 수 있으니 홈페이지를 참고하고 방문하길 바란다. 오랜 역사를 지닌 건물과 종각, 은행나무까지 보존되어 있는 경주 문화원에서 선선한 가을 날씨를 느껴보자.
경주문화원
 경상북도 경주시 중앙로 67-12
동경관
동경관
동경관은 신라의 왕실에서 사용하던 집기 등을 보관했던 곳이다. 또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는 외국 손님이나 중앙 관리들이 경주를 방문했을 때 머물거나 대기하던 객사로도 이용했다. 동경관은 1786년(정조 10년)에 다시 지어 사용했었는데 현재는 전체 건물의 일부분만 남아 있다.
예전에는 세 개(정청·동헌·서헌) 건물이었지만, 일제시대에 국민학교로 사용했다. 해방 후에는 2개 건물은 모두 철거하고 서헌만 지금 있는 자리로 옮겼다. 건물을 옮기기 전에는 정청에 조선 태조의 위패를 모시기도 했다.
동서쪽 건물은 6관의 관방(官房)이라 하였으며, 신라 옥피리를 비롯하여 청동제 화로 등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건물은 앞면 5칸·옆면 3칸 규모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이다.
현재 동경관에는 조선 시대 최석신이 쓴 ‘동경관(東京館)’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동경관
 경상북도 경주시 중앙로 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