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색공간
경주취연벼루박물관
색다른 취미가
색다른 배움의 공간을
만들어 내다.
글 글 _ 오미령
사진 사진 _ 박형준
어린 시절 한 번쯤 ‘벼루’에 ‘먹’을 갈아 ‘종이’ 위에 ‘붓’으로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려본 기억이 있을 것이다.
우리는 이 네 개의 도구를 통틀어 문방사우(文房四友)라고 부르는데 지금은 많은 세월이 흘러 사용하는 일이 거의 없고 보기도 어려워졌다.
그런데 천년 고도의 도시 경주에 이 문방사우를 모두 만나볼 수 있는 곳이 생겼다.
다양한 문화와 깊은 역사가 새겨진 경주에서 만나는 또 하나의 볼거리 ‘경주취연벼루박물관’을 찾아가 보자.
벼루에 담긴 기억
벼루
경주취연벼루박물관의 손원조 관장은 기자 생활을 하던 시기에 취미로 무언가를 수집하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되었다. 고민을 하던 와중에 문득 어릴 적 제사를 드릴 때 지방을 쓰고 있는 어른들 곁에 앉아 먹을 갈던 기억이 났다고 한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벼루를 수집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이때부터 손 관장은 전국 곳곳을 돌아다니며 더 이상 쓰일 용도가 없어 골동품 가게에서도 사지 않는 벼루를 하나씩 구매하며 수집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지금까지 모은 벼루는 약 1,500여 점. 그는 전국에서 가장 많은 벼루를 소유하게 되었다.
손 관장이 ‘경주취연벼루박물관’을 개관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그는 경주 시민들은 물론이고 국내·외 관광객들에게 지난 50년간 벼루에 투자한 시간들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말한다. 그렇게 지난 2019년 4월 25일 우리나라 최초의 벼루박물관인 ‘경주취연벼루박물관’이 문을 열었다. 한 사람의 작은 취미가 배움의 공간이 되는 순간이었다.
벼루에 담긴 천 년의 시간
벼루
벼루
벼루
경주취연벼루박물관에는 약 150점의 벼루가 전시되어 있는데 그 재질과 형태가 모두 다르다. 또한 신라부터 조선까지 그 시대도 다양하다. 가장 먼저 볼 수 있는 신라 벼루는 특이하게도 흙으로 만들어졌다. 신라 토기 1,000개 중 1개가 벼루인 만큼 흔하지 않기 때문에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한다. 흙 벼루는 대부분 사찰에서 사경을 하기 위해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벼루는 신라시대에 비해 여러 형태의 벼루가 만들어졌다. 흙보다는 돌로 만든 벼루를 많이 사용했고 얇은 돌이 주가 되다보니 모양을 낼 수 없어 투박한 스타일이 특징이라고 한다. 반면 조선 벼루는 색이 다양하다. 검은색의 ‘오석’, 자주색의 ‘자석’, 자주색과 녹색이 합쳐진 ‘화초석’ 등이 있는데 같은 색의 벼루라고 해도 얼마나 사용했는지에 따라 색에 차이가 생긴다고 한다.
이 외에도 옛 선비들이 도포자락에 넣어서 가지고 다니던 휴대용 벼루인 ‘행연’, 여성들이 눈썹을 그릴 때 사용한 벼루인 ‘수정화장벼루’ 등 쓰임새도 다양한 벼루들이 전시되어 있다. 이렇게 많은 벼루 중에서도 손 관장이 가장 애착을 가지고 있는 벼루도 있을 터. 많고 많은 벼루들 가운데 손 관장은 애착벼루로 ‘자석반딧불이뚜껑벼루’를 골랐다. 처음 그것을 손에 넣었을 때 그 모습이 너무 예뻐서 계속해서 닦고 만지기만 했다고. 그래서 ‘자석반딧불이뚜껑벼루’는 계속 벼루를 수집할 수 있게 해준 원동력 같은 존재란다. 벼루 한 점에도 정성을 다했을 손 관장의 옛 모습이 그려졌다.
여행 속에서 찾는 작은 배움
벼루
최근 코로나19로 인해 대인접촉을 최소화하려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여행 스타일 또한 변하고 있다. 실내보다는 실외를, 다수보다는 소수를 선호하기 시작한 것. 박물관이나 미술관을 찾는 이들도 많이 줄어들고 있다. 그래서일까. 손원조 관장은 경주읍성을 보러온 사람들이 잠깐이라도 들렀다 갈 수 있길 바라는 마음에 멀리서도 볼 수 있도록 3층 높이에 박물관 이름을 새겨 놓았다고 한다. 손 관장은 사람들이 벼루에도 세월이 담겨 있고, 역사가 새겨져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이라고 말한다. 이색적인 공간에서 만나는 뜻밖의 배움, 경주취연벼루박물관으로 떠나보자.
위치 | 경북 경주시 화랑로107번길 10-9
시간 | 10:00~19:00(월요일 휴무)
관람료 | 성인 3,000원
경로·청소년 2,000원
문의전화 | 070-7393-86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