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주를 거닐다
한 마리 나비처럼
화랑의 언덕,
분황사, 황룡사지
청보리밭을 거닐다
글 글 _ 정미래
사진 사진 _ 박형준, 화랑의 언덕
길기만 했던 겨울이 지나고 비로소 봄이 찾아왔다.
들판에는 새싹이 피어나고 서서히 푸른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사람도 봄이 되면 움츠렸던 몸을 펴고 밖으로 나와 자연을 만끽하는데,
특히 경주에는 봄을 느끼며 걸을 수 있는 곳이 많다.
그중 화랑의 언덕, 분황사와 황룡사지 청보리밭으로 가 봄의 기운을 느껴보았다.
드넓은 언덕,
풍광이 아름다운 화랑의 언덕
푸르고 드넓은 초원이 마치 외국처럼 느껴지는 화랑의 언덕은 이미 여러 매체를 통해 소개되어 유명한 핫플레이스이다. 화랑의 언덕이 위치한 ‘단석산’은 김유신이 수련하여 검으로 바위를 갈랐다는 설화가 전해지는 곳이기도 하다.
화랑의 언덕
“와, 언제 도착해? 제대로 가고 있는 거 맞아?”
화랑의 언덕은 단석산 정상에 위치해 입구에서도 한참 가야 한다. 그 때문인지 가는 길 중간에 ‘여기 화랑의 언덕 맞아요’ 라는 재치 있는 표지판도 볼 수 있었다.
진입로를 지나 들어가면 ‘수의지’라는 큰 연못이 가장 먼저 보였다. 수의지를 따라 위쪽으로 올라가면 화랑의 언덕에 도달할 수 있었다.
푸르른 자연에 폭 안기는 느낌
화랑의 언덕에는 곳곳에 다양한 조형물과 쉴 곳이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어 사시사철 방문하기 좋은 곳이었다. 특히 봄철에는 따사로운 햇살과 푸르른 녹음을 느끼며 걷기에 안성맞춤, 가만히 걷다 쉬다 반복하며 화랑의 언덕을 오롯이 느끼다 화랑의 언덕 최고의 뷰포인트에 섰다. 바로 명상 바위다.
화랑의 언덕
화랑의 언덕
화랑의 언덕
학동마을이 내려다보이는
시원한 풍광
명상바위는 멀리서 볼 때엔 그냥 평범한 돌덩어리처럼 보였다. 그러나 가까이 다가가 명상바위에 앉으면 그 생각이 달라졌다. 명상바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겉으로는 산이, 안으로는 논이 마을을 포근하게 감싸고 있었다.
화랑의 언덕
화랑의 언덕
산이 주는 안정감과 아늑함
화랑의 언덕은 하늘과 맞닿아 있는 곳이다. 손을 내밀면 시리게 푸른 하늘에 손이 닿을 것만 같았다. 넓은 들판과 언제라도 거기에 있을 것 같은 뿌리 깊은 나무들이 심적 안정감을 선사해줬다. 화랑의 언덕에서 내려오는 길, 봄을 가득 충전하고 돌아왔다.
화랑의 언덕
화랑의 언덕
이용 시간 | 매일 9시~18시
입장요금 | 1인 2,000원
*주차 가능, 반려동물 동반가능, 피크닉 가능, 캠핑 불가
고즈넉한 분위기의 사찰 분황사
경주의 대표적인 사찰 분황사는 황룡사와 담장을 같이 하는 이웃사촌이다. 크지 않지만 특유의 고즈넉한 매력을 가진 사찰이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위대한 고승 원효대사가 거쳐 간 절이기도 하다.
분황사
알록달록한 연등이 눈길을 끄는 곳
분황사 입구에 들어가니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연등이다. 색색의 연등이 줄을 지어 달려있는 모습이 앙증맞고도 아기자기했다. 그러면서도 '누가 이렇게도 많은 소원을 부처님께 올렸을까?' 라는 생각을 하며 분황사 안으로 들어섰다.
언제나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모전석탑
분황사에 들어가면 무엇보다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국보 30호인 모전석탑이다. 지금의 모전석탑은 3층이지만 원래는 7층 혹은 9층이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미 기단부터 3층까지의 크기가 9.3m에 이르는 규모의 석탑인데, 7층 혹은 9층 규모라고 한다면 입이 떡 벌어지는 엄청난 규모다.
모전석탑은 신라 시대 석탑 중 가장 오래된 석탑이다. 임진왜란으로 인해 반쯤 파괴되기도 하고, 조선 시대에 잘못된 수리로 도리어 더 파손되기도 했지만, 오랜 기간 동안 그 자리를 지키며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분황사
분황사
원효대사의 가르침을 생각해보다
원효대사는 분황사에 머무르면서 「화엄경소」, 「금광명경소」 등 수많은 저술을 남겼다. 원효대사 이전까지 불교는 왕족이나 귀족의 전유물이었는데, 원효대사는 일심과 화쟁 사상을 중심으로 불교의 대중화와 불교 사상의 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일심 사상은 원효대사 사상의 밑바탕이다. 모든 인간의 마음이 평등하고 차별이 없다는 것을 깨우치는 것이 핵심이다. 화쟁은 여러 불교 이론 사이에서의 다툼과 투쟁을 화해하는 것이다. 그 과정에 집착을 버리고 서로를 보듬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았다.
분황사를 걸으며 원효대사의 일심과 화쟁 사상에 대해서 생각했다. 모두가 욕심을 버리고 평등하고 차별 없는 세상을 꿈꾸지만, 또 자신의 욕심 때문에 시련에 부딪히기도 한다. 이러한 우리의 상황에서 1,400여년 전 원효대사의 사상은 여전히 우리에게 많은 가르침을 건네고 있었다.
분황사
이용 시간 | 하절기(4월~10월)
오전 9시~오후 6시,
동절기(11월~3월)
오전 9시~오후 5시
입장요금 | 개인 성인 2,000원,
청소년, 군인 1,500원,
어린이 1,000원
단체 청소년 1,300원,
어린이 900원
초록빛 물결이 아름다운
황룡사지 청보리밭
고즈넉한 분황사에서 마음의 휴식과 평안을 얻었다면, 이제 청보리밭으로 발걸음을 옮기자. 청보리 밭은 분황사와 황룡사지로 가는 길에 있다.
청보리는 바람이 불 때마다 그 방향에 따라 몸을 맡겼다. 이런 청보리의 모습을 보면 흐드러지게 핀 꽃과는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저 멀리까지 펼쳐진 청보리의 향연이 마음을 따사롭고 풍요롭게 했다.
유적과 청보리가 어우러진
경주만의 색다른 매력
이곳 분황사와 황룡사지 사이의 청보리는 봄부터 여름까지 특유의 매력을 뽐낸다. 처음에는 새싹처럼 푸릇푸릇하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노르스름한 황금빛으로 서서히 물든다.
전국 여러 곳에 청보리밭이 자리하고 있지만, 경주의 청보리밭은 다른 곳과는 차별화된 매력이 있었다. 바로 청보리밭 중간에 당간지주가 굳건히 자리했다는 점이다. 사찰에서는 의례나 행사가 열리면 깃발을 높이 달았는데, 깃을 당, 깃대를 당간이라고 했다. 긴 당간이 흔들리지 않도록 지지하는 것이 이 당간지주이다. 보통 당간지주는 절의 입구에 세워졌다고 한다.
이곳의 당간지주는 남쪽으로 황룡사지, 북쪽으로 분황사 사이에 자리 잡고 있는데, 분황사로부터 50m 지점에 위치해있어 분황사 소속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푸르른 청보리밭 위에 우뚝 솟은 돌기둥 두 개.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니라고 생각이 들 수도 있지만, 신라시대부터 지금까지 한 자리를 지키고 있는 당간지주를 보니 이곳을 지키는 수호신처럼 보이기도 했다.
청보리밭
해가 지는 찰나의 순간,
청보리가 황금빛으로
멀리서 보면 청보리가 빼곡하게 심어져 있지만, 중간 중간 걸을 수 있는 길이 나 있어 걷기에 참 좋았다. 가끔은 흙길을, 가끔은 돌길을 걸으며 넓은 청보리밭 사이를 걸으면 일상의 시름이나 걱정 같은 것들이 날아가는 것만 같았다.
해가 지는 청보리밭은 전혀 다른 모습으로 변했다. 석양의 빛을 받은 청보리밭은 황홀한 황금빛으로 물들었다. 노을의 빛을 흠뻑 머금어 바람결을 따라 흔들리는 것이 장관이었다. 그러나 그 시간을 길지 않았다.
태양이 산 너머로 모습을 숨기면, 다시금 고요가 청보리밭에 찾아들고, 하릴없이 멈추었던 걸음을 다시금 옮겼다.
황룡사지 청보리밭
이용 시간 | 상시 이용
*분황사 주차장 이용 가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