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인장인을 찾아서 : 금속공예

작성자
관리자
등록일
2009-12-20
< 금속공예 > 경주의 명품 - 금속공예 명장 김 진배 시나리오

경주, 신라 천년의 도시 서라벌.
천년의 역사는 아직도 찬란하게 이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역사는 우리를 다시 꿈꾸게 한다.
신라를 일컬어 일찍이 황금의 제국이라 했던가. 바람이 불지 않아도 스스로 흔들린다는 신라 금관!
천년의 잠 속에서 깨어나 구름의 층계를 오르는 햇살처럼 우리 앞에 오롯한 금관, 그 눈부심에 가슴 깊이 잠자던 어둠의 골짜기가 환하게 열린다.
신라금관은 천년 신라가 남긴 찬란한 문화유산 중에서도 가장 정교하고 빼어난 예술적 가치를 지닌 신라유물의 백미다.

경주시 하동 민속공예촌 단지 안에 자리한 삼선방.
그리 넓지 않은 공방에는 가위며 송곳, 망치, 정, 끌 등이 정갈하게 정돈되어 있다.
이곳은 유물복원 전문가 김진배 씨가 그의 부인 박정희 씨와 함께 천년 신라 유물을 오늘에 되살리는 작업장이다.

경주에서 태어나 신라 천년의 혼을 이어가는 사람 김진배 씨.
그는 명실공히 우리나라 금속유물 복제 일인자, 한국의 명장이다. 그가 유물복제의 길로 들어선 것은 1993년, 부친 김인태 씨가 작고하면서 부터이다.

부친인 김인태 씨는 금속공예 명장으로 국내는 물론 이웃 일본까지 명성이 자자했던 금속공예계의 독보적 인물이었다.
그의 선친은 ‘영원한 신라인’으로 불리는 경주 향토사학계의 거두 고 윤경렬 선생으로부터 조각과 공예를 배운 경주의 혼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진정한 장인이었다.

제155호 고분 천마총에 진열된 국보 제188호 금관을 비롯한 장신구, 마구류, 무기류 등 27종의 53점이 고 김인태 씨의 작품이다.

특히 천마총 금관은 진품과 구별하기 힘들다는 평을 받을만큼 섬세하고 정교하다. 때문에 전국의 웬만한 박물관, 기념관 중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을 정도다.
오히려 일부러 진품과 조금 다르게 만들어 혼돈되지 않도록 할 정도였다고 하니 그 솜씨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만하다.

이런 분을 아버지로 두고 경주에서 태어난 김씨는 어릴 때부터 부친의 유물 복원 작업을 눈여겨보며 기초를 닦았다. 자연스럽게 아버지의 모든 것이 자신에게 스며들었다는 것을 느낄 정도로 부친이 하는 유물복제에 빠져들었다.
우리의 문화유산에 좀더 가까이 가기 위해 전국의 유적지는 다 다녔고 박물관이란 박물관은 다 다녔다.
대학에서도 국사를 전공하면서 고미술과 고고학, 그리고 금속공예도 특별한 관심을 가지며 쟁이의 길을 꿈꾸었다.

그가 본격적인 유물복제에 들어선 것은 부친이 57세의 이른 나이로 타계하면서부터 가업을 이어 받았다.
이후 아버지의 장인정신과 솜씨에 비할 수는 없지만 혼신을 다해 작품을 만들겠다는 각오로 여기까지 왔다는 김진배 명장은 오리고 다듬고 두드리고 붙여내는 복제품에서 옛 장인의 숨결을 그대로 살려내고 있다.

그가 만든 복제품은 국보 제189호로 천마총에서 출토된 금모, 국보 제191호인 금관 및 수하식과, 국보 제 154호 금제관식 등 모두가 국보급 유물이다.

신라 유물 외에도 국립부여박물관의 무령왕관식, 부산복천박물관의 금관과 이식류, 국립 대구·김해 박물관, 대가야왕릉전시관 유물, 김해박물관 철갑옷 등 수많은 유물을 복제하였다.

그가 특히 아끼는 유물복제품은 그가 복제한 것 중 정교함의 극치를 자랑하는 경주 부부총에서 나온 금제태환이식이다.
국보 90호인 금제태환이식은 길이 8.7㎝ 왕방울에 고리를 꿰어 늘어뜨린 유물로 0.7㎜의 깨알 같은 금구슬 5천여 개가 붙어있어 현존 귀고리 유물 중 가장 화려한 것으로 꼽힌다.

유물 복제의 전 과정은 당연히 수작업이다.
수없이 두들기고 붙이는 과정을 되풀이하는 금속유물 복제 작업은 신라예술의 백미로 꼽히지만 작업은 고된 과정이다.
화려한 외양만큼이나 정교하고 섬세한 공정을 요하기 때문이다.

금제태환이식 제작 역시 수작업의 정교함과 인내심, 특별한 장인정신을 필요로 한다. 5천여 개의 구슬을 일일이 붙이는 금땜 작업은 그 중에서도 가장 힘든 제작과정이다.

그가 복제한 황남대총 출토 금관복제품 또한 하나하나 세세한 수작업으로 복원해낸 금관이다.
얇은 금판에 출(出)모양의 밑그림을 그리고 그 위에 본을 대고 가장자리를 따라 가면서 끌과 망치로 세움장식과 관테를 떼어 낸다.

그런 다음 거기에 문양을 넣고 둥근 날개를 금실로 엮어 표면에 장식하고 옥과 금드리개를 매달아 장식한다. 그런 과정을 거쳐 금관 하나를 제작하는데 꼬박 한달이 걸린다.

김진배 씨가 완벽하게 복원해 낸 신라 금관.
60여개의 곡옥과 360개의 영락이 일제히 파르르 움직이며 떨린다.
마치 수백 마리의 황금빛 나비가 하늘로 오르는 것 같은 찬란함과 눈부심!
그 화려하고 찬란한 떨림 앞에서는 작은 숨소리도 멎을 것만 같다.

유물이 있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는 김진배 명장.
복제작업은 금관, 귀고리의 도금, 주물, 칼라까지 그의 손을 거치면 천년 저 너머의 세월이, 그리고 역사가 우리 앞에 오롯이 펼쳐진다.

복제할 유물에 대해 사진 촬영을 하고 본을 뜨고 치수를 잰 후 공방에서 몇 달을 칩거하면서 고된 작업과정을 감당해 낸다.
그 과정은 고독하고 외롭다. 그러나 선조의 역사를 재현해 낸다는 자부심과 긍지로 그의 가슴은 뜨겁다.

김진배 명장에게는 하나의 원칙이 있다.
단순한 복제품이 아니라, 다시 말해 모양만 진품과 똑같이 만들어내는 복제품이 아니라 관람자에게 감동을 줘야한다고 말한다.
옛 선인들의 예술혼이 담긴 것. 그것이 "진짜 복제품"인 것이다.
혼이 들어가고 장인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들 때만이 감동을 주는 진짜 복제품이 탄생되는 것이 아닐까. 가짜와 복제품이 엄연히 다른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깨알같은 작은 장식 하나에도 장인정신이 스며있어야 한다는 선친의 말씀, 생각할수록 진리이며 늘 자신을 깨우는 죽비같은 말씀이다.
스승이자 선친으로부터 이러한 장인의 정신을 배운 그는 말한다.
진정한 유물을 복제했다는 말을 들으려면 신라인의 정신부터 공부해야 한다고.

수상경력 또한 만만치 않다. 1993년 전국 공예품 경진대회 특선을 시작으로 경상북도 공예품 경진대회, 경상북도 관광기념품 경진대회 특·입선, 동상15회의 수상경력을 높이 사 2001년에는 경주세계문화엑스포2000 행사 공로를 인정받아 도지사표창을 받았다.

어떤 국보나 보물, 아무리 정교한 문화재라도 그의 손을 거치면 오롯이 재현되는 복제전문가 김진배 씨. 그의 복제품은 그의 질박하고 올곧은 인품과 함께 영원히 빛을 잃지 않는 또 다른 문화유산이라 하겠다.

김진배 씨의 장인정신은 유물 복제에만 머물고 있지 않다.
유물과 유적을 활용하여 새 상품도 개발하고 있다. 유물이 박물관에만 있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의 일상 속에서 함께 숨쉬며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실험정신은 순은으로 만든 잔, 곡옥 목걸이, 귀걸이와 팔찌, 12지신상 목걸이 등 다양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모두가 유물의 문양과 형태를 활용한 것들이다.

신라인의 정신까지 작품에 담는 것은 김진배 명장!
선친으로부터 물려받은 신라인의 장인정신과 혼으로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유물을 복제하는 데 최선을 다하고 연구를 게을리 하지 않겠다고 말한다.

그는 단순한 유물을 재현하는 복제전문가를 넘어 신라예술, 나아가 찬란한 우리 민족문화의 원형질을 복원하는 숭고한 길을 걷는 진정한 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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