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 本 경주
경주 한 바퀴
‘한진’에 묵지 않았다면, 경주를
가봤다 하지마라!
Since 1977
한진장여관(Hanjin Hostel)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봤을 법한 여행지, 경주는 이제 외국인들에게도 꼭 가봐야 하 는 한국의 필수 관광지로 자리 잡은 지 오 래다. 경주의 외국인 관광객 역사와 그 궤 를 같이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곳이 노 서동에 있다. 한국인들보다 외국인들에게 더 잘 알려진 한진장여관이 그 주인공이다.
글 김수란 사진 오철민

수학여행, 그 전엔 신혼여행 성지였다
지금은 수학여행 필수 코스로 유명하지만 아주 오래 전, 경주는 신혼여행의 성지였다. 1977년 말 문을 연 한진장여관의 2대 주인장인 권오국 사장은 그 시절 경주를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었다.
“가난한 젊은 부부들이 갈 데가 어디 있나. 제주도는 언감생심이지. 다들 경주로 신혼여행을 왔다고. 시외버스터미널에 양복입은 젊은 남자, 한복입은 젊은 여자가 내렸다 하면 두말할 필요없이 막 결혼한 신혼부부였지. 보문관광단지는 잘 사는 부부들이나 갔던 곳이고, 지방에서 온 사람들은 다 이 근처에 머물렀지. 조식도 주고 얼마나 좋아.”
터미널 앞에 죽치고 호객행위를 하던 소위 ‘삐끼’들은 순진한 신혼부부의 가방을 훽 낚아채 인근 여관, 여인숙, 장 등으로 이끌었다. 한진장여관도 처음에는 신혼부부들에게 잘 곳을 내어주던 곳 중 하나였다.
서울올림픽 이후 늘어난 다양한 국적 외국인
70년대 말, 80년대 초까지만 해도 경주를 찾는 외국인이라곤 일본인이 대부분이었다.
“일제강점기를 보낸 아버지가 일어를 잘해서 일본손님도 많이 받았어. 그런데 88올림픽 이후로 독일, 소련(현 러시아), 미국 등 국적이 다양해진거야. 이때 아버지가 독학으로 영어를 배우셨지. BBC 라디오 방송을 종일 듣던 모습이 지금도 떠올라.”
파란 눈에 노란 머리칼의 외국인을 소금까지 뿌리며 문전 박대하던 그 시절, 권 사장의 아버지는 여느 객과 다름없이 그들을 따스하게 반겨줬다. 주인장의 호의에 반한 외국인들 사이에서 한진장여관은 이내 입소문을 타기 시작했고 세계 최고 여행 가이드북 ‘론리플래닛’ 한국편에 경주 대표 숙박업체로 소개되면서 더욱 유명세를 치르게 됐다.
“아버지는 직접 만든 경주 관광지도로 꼭 가봐야 할 명소와 맛집들을 소개해주기도 하고, 한국의 식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어하는 외국인들에게 집밥을 권하며 스스럼없이 어울렸지. 이런 점이 그들에게 특별한 매력으로 다가왔던 것 같아. 오죽하면 시외버스터미널 인근 택시기사들 사이에서 우리 아버지가 8개 국어를 한다는 소문까지 돌았겠어. 하핫.”

대를 잇는 여관, 대를 잇는 손님
1대 주인장이었던 권 사장의 아버지는 12년 전 세상을 떠났고, 지금은 그의 아들이 대를 이어 여관을 운영하고 있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한동안은 문을 닫았어. 폐업신고까지 했으니까. 그런데도 외국 손님들이 계속 오는거야. 내칠 수 없으니 한명, 두명 받다가 다시 정식으로 영업신고를 하고 운영하게 됐어.”
흘러온 세월만큼이나 어느새 켜켜이 쌓인 한진장여관에 대한 추억은 부모에서 자식으로 대를 이어 지속됐다.
“운영한 지 47년이 넘다보니 학생 때 방문했다가 성인이 된 후 다시 찾는 경우도 있고, 결혼해서 자녀와 함께 경주를 왔다며 묵고 간 경우도 있지. 은퇴 후 정기적으로 꾸준히 방문하는 외국인도 있고…. 아, 여행 중 우리 여관에 묵으며 호감을 느껴 연애하다가 결혼까지 성공한 국제커플도 꽤 여럿 된다니까.”
권 사장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지금의 ‘가족같은 분위기’의 한진장여관은 주인장의 노력에 외국인 손님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더해져 탄생한 것이 아닌가 싶다.
2026년, 50주년을 준비하다
이야기가 마무리될 때 즈음, 권 사장은 대뜸 엽서 한 장을 무심하게 건넸다. 한진장여관에 오는 손님들에게 건네주는 일종의 기념품과 같은 엽서다. 엽서 앞면에는 옛 경주의 모습이 담겨 있었는데 뒷면을 펼치자 인상깊은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50th Anniversary year 2026, one bottle of wine one night sleep at hanjin hostel.”
한진장여관이 문을 연 지 50주년이 되는 2026년에 와인 한 병을 들고 오면 하루 숙박이 무료란다. 과연 이곳 ‘주인장’다운 기념 축하 방법이라는 생각이 들어 입가에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옛날에는 이곳 주변이 다 허허벌판이었어. 미나리밭이 있었고, 도로도 비포장이어서 차가 지나다니면 먼지가 ‘풀풀’ 날리고 그랬지. 이런 옛 경주의 모습을 기억하고 있는 손님들이 50주년 되는 해에 찾아오면 좋겠어. 다시 모여 함께 어울리면 정말 즐거울 것 같아.”
확실히 과거의 경주와 지금의 경주는 많이 다르다. 노후를 핑계로 옛 건물들이 사라져가고 현대화된 반듯한 건물들이 들어선 지 한참이다. 권 사장은 이런 변화에 대해 외국인들이 무척 아쉬워한다고 말한다.
“너무 현대화가 된 지금 모습에 경주만의 매력이 사라진 것 같아 많이 안타까워 해. 10년이 뭐야, 6 ~ 7년 전까지만 해도 이 근방에 원룸촌 대신에 찌그러져가는 한옥이 있었고, 굿을 하는 무당집이 있었고, 푸짐한 반찬으로 외국인들을 깜짝 놀라게 하는 가정식 백반집이 있었고 그랬지.”
50주년이 되는 2026년도에 모아진 와인을 가지고 추후 깜짝 놀랄 만한 이벤트를 구상 중이라는 주인장이다. 경주를 찾는 외국인들에게 어떤 잊지 못할 추억을 그가 선사할지 덩달아 기대가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