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本 경주
나의 경주

서라벌에서
머물다

익명의 독자분께서 경주시에 보내온 소중한 글을 여러분과 함께 공유합니다. 행복했던 그분의 추억을 함께 느껴보면 어떨까요?

나의 경주

#1. 그리웠습니다.

수십 년 만에 우리 내외와 두 아우가 함께 경주로 1박 2일 동안 소박한 여행을 떠나기로 마음을 모았다. 제천에서 중앙선 무궁화호 기차를 타고 남쪽으로 가는 2시간 40분 동안 창밖의 풍경을 보며 인생을 생각하는데 어느덧 신경주역에 도착했다.
우리는 시내로 들어가기 전, 건천에 있는 박목월 생가를 찾았다. 사무실 입구에 놓여있는 방명록에 무슨 말을 쓸까 하고 서로 쳐다보며 웃다가 남편이 먼저 ‘그리웠습니다. 청주 나그네’라고 기록했다. 막내는 ‘그냥 왔습니다’라고 썼는데 그 말도 그리움과 상통하는 말이라고 나름 해석해 고즈넉한 박목월 생가에 웃음꽃이 만발했다.
시인의 생가에 오니 여고 시절 눈만 뜨면 박목월의 시 ‘나그네와 윤사월’ 등 교과서에 실린 시들을 노래하듯 소리 내어 외우던 생각이 난다. 그때는 실타래가 풀리듯 입에서 시가 저절로 터져 나왔었다.
피를 토하듯 시와 씨름했던 한 지식인의 시가, 생가 주변 돌비에 새겨져 있어 하나하나 읽으며 발걸음을 옮기다 ‘송아지’ 시비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 시가 박목월의 시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구전 동요로 알았던 노랫말이 박목월의 시라니…. 감탄을 연발하며 송아지 시비 앞에서 숨겨놓은 보물을 처음 발견한 사람들처럼 놀라서 서로 쳐다보았다.

#2. 첨성대 주변에서 아주 많이 행복했습니다.

황남동으로 들어서자 좌우로 익숙한 풍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작은 도로를 가운데 두고 오른쪽으로 첨성대와 대릉원이 얼굴을 드러내고 경주 빵집, 찰보리 빵집 등이 몇 년 전에 왔을 때처럼 그대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마치 고향에 온 것처럼 마음이 편안해진다.
우리는 첨성대 주변을 돌면서 학창시절로 돌아갔다. 어린 시절에는 어마어마하게 커 보였는데 지금은 거대함보다 오히려 친근감이 들 정도로 아담했다. 우리의 시야가살아온 세월만큼 넓어진 탓이리라.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을 대상으로 관광 해설사들이 이곳저곳에서 열정적으로 첨성대에 관한 설명을 하고 있었다. 성심성의껏 유적을 설명하는 해설사, 진지하게 경청하고 있는 학생들 사이로 세계에 내놓을 만한 문화유적이 있다는 사실에 자랑스러워졌다.
우리는 첨성대 주변을 둘러보고 나서 월정교를 걸을 때는 신라인들의 지혜에 놀라고 또 놀라워했다. 첨단 장비가 없던 시절인데도 기둥과 천정 등 외관이 하나같이 정교하게 만들어져 지금 지은 것과 비교해도 하나도 손색이 없어 보였다.
경주에 올 때마다 느끼는 것이 주변에 굴러다니는 돌 하나, 풀 한 포기까지 모두 문화재로 생각된다는 것이다. 그래서 보이는 것마다 신비해서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그 당시 왕과 신하들은 무슨 말을 주고받았을까? 이 땅에서 천년의 역사를 써 내려간 민초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앞으로 누군가 이 길 위에서 오늘 우리처럼 한 시대를 살며 또 하나의 역사를 만들어갈 천년 후의 사람들이 궁금해졌다.

#3. 박물관 앞집에 살았습니다.

다음 날, 점심 식사를 하기 위해 서부동에 있는 옛날 손칼국수 집으로 향했다. 나는 몇 년 전에도 이곳에 들른 적이 있는데 주인 할머니의 양념장 맛이 일품이었다. 우리가 한 그릇을 더 주문해서 나누어 먹으며 맛있다고 하니 할머니는 미소를 지으며 이 자리에서 37년 동안 장사를 하고 있다고 했다.
칼국수 국물까지 들이켜고 식당 내부를 둘러보는데 남편이 “내가 학창시절에 이 집에서 살았어. 여기 보이는 방두 개를 사용했고 지금 식당은 거실을 조금 고친 것이야” 라고 말했다. 두 아우는 눈을 휘둥그레 뜨며 “어머 그러세요? 박물관 앞집에서 사셨네요?” “지금 자리를 옮긴 국립박물관이 내가 어린 시절에는 이곳에 있었지.” “매형은 정말 좋은 곳에서 사셨네요.” 역사에 관심이 많은 아우는 박물관 옆에 집이 있었다는 사실이 신기하다고 했다.
소년(남편)은 엄마가 출근하면 학교에서 돌아와 박물관으로 뛰어가 천년 전의 사람들과 해후를 하며 소년 시절을 보냈다. 형제 없이 외롭게 자란 소년은 박물관에서만은 전혀 외롭지가 않았다. 이곳에서 그는 왕과 귀족이 되기도 하고 어느 때는 화랑이 되어 나라를 지키는 꿈을 꾸면서 뼛속까지 신라인으로 성장해갔다. 그래서 노인이 된 지금도 꿈을 꾸듯 서라벌을 그리워하고 있다.
두 아우도 자신들만의 추억여행을 떠나고 있는지 침묵하고 있다. 타임머신을 타고 떠나는 추억여행은 그립고 그리워서 자꾸 두 눈에 이슬이 맺히고 가슴이 먹먹해진다. 훗날 아주 많이 그리워할 이 순간들이 초침 속에 또 하나 포개어지고 있다.

비전 경주한국을 넘어 세계로! 2025 APEC 정상회의 경주 유치 도전
경주 알리미경주 알리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