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本 경주
나의 경주

천년의 숲 황토 맨발 길

* 독자투고 경주시 북부동 최태호 님이 보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

도시를 지나 혼탁해진 바람이 천년의 숲에 이르면, 솔잎은 부지런히 바람을 걸러낸다. 맑고 서늘한 공기로 정화된 바람은 공원의 숲속으로 물결처럼 퍼져나가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평화와 안식을 나눠주고 있다. 오늘도 무더위를 피해 청량한 바람이 감도는 천년의 숲을 향해 발걸음을 재촉한다. 울창한 소나무숲 가늘게 이어지는 오솔길을 따라 10분쯤 걸어 들어가면, 한꺼번에 여러 사람이 앉아서 발을 씻을 수 있는 간이 세면장이 마련되어 있다. 그 옆에 큼직한 신발장 두 개가 마주 보고 놓여있고, 주변이 온통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경주 황성공원 소나무 숲속에 마련된 황토 맨발 길의 출발점이요, 한 바퀴 돌아오면 종착점이 되는 곳이기도 하다.
바지를 무릎 높이까지 걷어 올린 뒤 운동화를 벗어 신발장 안 빈자리를 찾아 넣는다. 양말은 벗어 신발 속에 넣어두고 물병과 휴대폰을 챙겨 들고 돌아서면 맨발 걷기의 준비가 끝난다. 이제 황톳길 위로 도도한 물결처럼 흘러가는 인파 속으로 몸을 섞으면 맨발 걷기가 시작되는 것이다.솔숲 사이로 구불구불 뻗어있는 황톳길은, 한 바퀴 돌아오는 데 걸리는 시간이 어림잡아 10분에서 15분쯤 걸린다. 성인들의 발걸음으로 1,200보 내외인 것으로 보아 거리가 1km인 것 같다. 본래 500m였던 짧은 길인데 근래에 추가 공사를 하여 연장한 것이다.
천년의 숲속에 마련된 황토 맨발 길은 한낮에도 그늘 속으로 걸을 수 있어 시민들 모두가 좋아하는 새로운 명소가 된 곳이다. 남녀노소 구분이 없고 국적도 계층도 다양하기 짝이 없다. 어제는 17개월 된 사내아이가 엄마의 손을 잡고 아장아장 맨발로 걸어가는 모습을 보았는데, 오늘은 양손에 지팡이를 든 90이 넘었다는 할머니도 보았다. 모두가 제 나름의 건강 증진을 위해 잘 다듬어진 황톳길 위로 부지런히 걸음을 옮기고 있다.
오솔길 옆에는 나무로 만든 예쁜 안내판이 서 있고, 곁에 커다란 현수막이 걸려 있다. 모두의 건강을 위해 반드시 맨발로 이용할 것과 사람들끼리 부대낌을 방지하기 위해 붉은 화살표로 커다랗게 진행 방향을 표시해 놓았다.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돌아가도록 그려져 있는데, 간혹 반대로 걸어오는 사람이 있다. 폭이 좁은 길이라 교차하면서 어깨나 팔이 부딪히는 때도 있지만, 한사코 자신의 진행 방향을 고집하는 꼴불견인 사람이다.
근래에 전국적으로 붐을 일으키는 맨발 걷기는, 신발로 인해 차단된 몸속 전류를 땅속으로 흘려보냄으로 건강을 증진하려는 사람들의 욕망이 일치되어 나타난 현상으로 보인다. 몸속 노화의 주범인 활성산소가 땅속 음이온을 만나 정화되면, 면역력이 증진되고 각종 질병에 치유 효과를 볼 수 있다는 얘기가 인터넷을 통해 퍼져나간 결과물인 것 같다.솔 향기 풍기는 청량한 바람을 맞으며 잘 다듬어진 황톳길 위를 맨발로 걷다 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시야가 선명해진다. 잡다한 세상 번뇌에서 벗어나 마음도 더없이 평화로와 진다. 기분이 상쾌해져 콧노래가 절로 나온다.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 모두가 까닭 없이 친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도 건강을 염려하는 동병상련의 마음 때문인 것 같다. 매일 비슷한 시간대에 황톳길을 찾다 보면 어제 보았던 사람을 다시 볼 때가 많다. 어쩌다 안면이 트인 사람과는 인사를 나누는데, 대부분 무표정하게 못 본 척 지나간다. 그 표정도 천차만별이다. 건강하게 세상을 살아내기가 쉽지 않다는 듯 밝은 표정보다는 어둡고 우울한 표정들이 더 많아 보인다.
노후 건강이 염려되어 시작했던 맨발 걷기가, 어느새 일상처럼 되어버렸다. 점심을 먹고 나면 다소 귀찮은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약봉지 챙기듯 빠짐없이 실천했던 맨발 걷기가 어느새 3개월째 접어들고 있다. 오랫동안 돌보지 않았던 지친 육신에 생기가 돌아오는 것 같다. 여러 방면에서 병원 약보다 효과가 더 좋은 것을 몸소 체험도 하고 있다.
민가에선 아직도 고성숲으로 불리는 황성공원은, 신라 시대 화랑들의 훈련장과 왕실의 사냥터였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본시 이곳은 동쪽으로 백율사가 위치한 소금강산에서 시작하여 고양수와 임정수로 불렸던 숲들을 지나 서천 강변 유림 숲까지 이어졌던 광활한 지역이었다.
세월 따라 숲을 가로질러 도로가 뚫리고, 이리저리 주거 지역으로 분리되어 떨어져 나가면서 현존하는 숲의 면적이 335,513㎡로 줄어들었다. 하지만 도시 한가운데 이만한 크기의 천년 숲을 공원으로 가지고 있는 나라는 지구촌 어디에서도 찾아보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 지역이 공원으로 지정된 것은 1975년 2월 17일 경상북도 고시 23호에 의해서다. 내가 태어나 평생을 살아가는 경주에는 도시 한 가운데 천년의 숲이 있다. 구도심과 신도시를 가르는, 북천 강변에 자리 잡은 울창한 그 숲속에 근래에 황토 맨발 길이 생겼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시민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경주에서 가장 뜨거운 장소다.
자신의 건강을 염려하지 않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맨발 걷기를 하는 사람들 모두가 하루빨리 자신들이 바라는 건강 목표를 달성했으면 싶다. 잠시 생각에 잠긴 사이 숱한 사람들이 곁을 스치고 지나간다. 끊임없이 계속되는 인파들의 모습이 마치 피난민 행렬을 보는 것 같다. 모두가 엄숙한 표정으로 부지런히 앞을 향해 걸어가고 있다. 노년의 건강을 염려하는 나 또한 서둘러 황톳길 위 흘러가는 인파 속으로 몸을 섞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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