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하다
나의 경주

고택에 머물며 경주에 물들다

* 독자투고 경기도 시흥시 신천동 김예진 독자님이 보내주신 소중한 글입니다.

경주월암종택

경주월암종택(경상북도 경주시 식혜골길 35)

동궁과 월지(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안압지)

동궁과 월지(경상북도 경주시 원화로 102 안압지)

큰 도로(경상북도 경주시 천원1길)

큰 도로(경상북도 경주시 천원1길)

경주 송대말등대(경상북도 경주시 척사길 18-94)

경주 송대말등대(경상북도 경주시 척사길 18-94)

경주역에 내렸다. 분무기를 뿌려대는 것 같은 는개가 내리고 있었다. 는개 덕분에 역 뒤에는 산이 안개에 반쯤 덮인 채 걸쳐있었다. 나는 이 풍경을 보자마자 환호를 질렀다. 비를 좋아하지 않지만, 경주가 건넨 첫 인사가 무척 아름다웠기에 영화적인 순간을 위한 장치처럼 느껴졌다.

숙소는 일명 ‘핫 플레이스’라 불리는 황리단길에서 차로 약 10분 거리에 자리 잡고 있었다. 숙소로 걸어가는 길 주변에는 논과 밭이 있었다. 멀리 마을회관이 보이고, 전원주택들이 보였다. 복제품처럼 똑같이 지어진 신축 아파트와 다르게 제각기 다른 구조와 형태로 자릴 지키고 있는, 말 그대로 시골집이었다.

‘조선 중기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나라를 지킨 김호 장군의 생가입니다. 1977년 국가 지정 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마당에는 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우물이 천 년이 넘는 세월 동안 마르지 않고 있습니다.’

경주에 괜찮은 숙소는 많았지만, 옛것이 고스란히 보존된 곳에서 머무르는 것 자체가 내게는 큰 의미이자 영광이었다. 숙소 체크인 시간 전이라 주변을 어슬렁거리다가 대추나무에서 연둣빛 대추 한 알을 따 먹었다. 대문 앞까지 나와 우리를 반겨준 월암종택 주인은 친근한 경상도 사투리로 고택 곳곳에 담긴 이야기를 들려주셨고 직접 만든 식혜와 삶은 땅콩 그리고 말린 곶감과 깨강정을 내어 오셨다.

숙소에서 나와 유적지가 있는 곳까지 걸어갔다. 큰 도로를 가로질러 샛길로 빠졌다. 옛날에는 구판장이라고 부르던 오래된 천원 슈퍼, 인적 없이도 우두커니 서 있는 천관사지, 빨간 오토바이를 타고 지나가는 동네 어르신들, 그리고 고양이들. 나를 스쳐 가는 모든 것이 그저 아름다웠다. 단 하나라도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눈에 깊게 새겼다.

월정교의 앞에 강을 건널 수 있도록 돌다리가 설치되어 있었다. 엄마와 어린 아들이 손을 잡고 한 칸, 한 칸 돌다리를 건너는 뒷모습을 카메라에 담았다. 월정교는 낮보다 밤이 더욱더 매력적이었다. 무엇보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강가에 비친 월정교가 오묘하고 흐릿하게 그려진 한 폭의 유화 같았다.

사촌 동생이 입이 마르게 추천하던 동궁과 월지는 은은하게 흘러나오는 가야금 소리를 배경음악 삼아 거닐던 순간 진심으로 울컥했다는 곳이었다. 그리고 나는 그 진심어린 말 한마디에 끌리듯이 경주에 오게 되었다. 빗소리를 들으며 빗물에 튀는 연못을 바라보았다. 유유히 떠다니는 오리는 못이라는 그림에 점 하나를 찍듯 화룡점정을 이루었다.

종택에 돌아와 좁은 방 안에 두꺼운 이불을 깔고 누워 백색의 형광등을 보고 있자니 어릴 적 친가댁에서의 추억이 떠올랐다. 다음 날 아침에도 전날보다 더 굵은 빗줄기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밭일을 막 마치고 돌아온 주인 어르신은 찐 옥수수와 삶은 달걀, 사과를 내어 오셨다. 처마 밑 마루에 걸터앉아 소박하고 정겨운 간식거리를 먹으며 빗소리를 감상했다. 마루 밑에 놓인 고무신을 신고 발길이 닿는 대로 걸어보았다. 떠나기가 무척 아쉬웠다. 방에 돌아와 방충망으로 훤히 보이는 고요한 마당을 응시했다. 이 장면을 마치 한 컷의 사진처럼 머릿속에 선명히 새기기 위함이었다.

언제 찾아도 좋은 경주, 아름다운 경주이다. 그중에서도 월암종택이 가장 선명하게 떠오른다. 내가 좋아하는 시골 풍경이 오롯이 담겨 있어서일까. 경주에 다시 가게 된다면 꼭 그곳에 머무르고 싶다. 시간이 허락한다면 꽤 오래 오래 그리고 아주 천천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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